음악사

서양음악사- 중세(4) 오르가눔

돌체밀 2024. 2. 23. 14:33
반응형

 

초기 다성음악

약 9세기까지 유럽에 존재하였던 교회음악은 모두 단성음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러나 단성 성가에 새로운 방식으로 선율을 첨가하는 관행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는데, 이러한 과정에서 다성음악이 탄생하였다. 이는 기존 성가에 가사나 선율을 수평적으로 더하는 과정을 통해 트로프와 시퀀스가 나타난 것과 같이 선율을 수직적 또는 동시적으로 첨가하면서 둘 이상의 선율들이 동시에 혼합된 형태였다.

 

병행 오르가눔

최초로 악보로 기록된 다성음악은 9세기 말에 쓰여진 <무지카 엔키리아디스>와 그의 주석서인 <스콜리카 엔키리아디스>라는 음악 이론서를 통해 볼 수 있다. <무지카 엔키리아디스>의 필사본에는 오르가눔의 악보 예와 함께 오르가눔을 즉흥적으로 부르는 방법에 대한 규칙이 나타나있다. 오르가눔은 여기서 병행 오르가눔과 수정된 병행 오르가눔의 두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병행 오르가눔은 주성부(vox principalis)라고 불리는 그레고리오 성가 선율 아래에 오르가눔 성부(vox organalis)라고 불리는 첨가된 성부가 4도 또는 5도, 옥타브 간격으로 엄격하게 병진행하는 형태를 나타낸다. 병행 오르가눔에는 단순 오르가눔과 복합 오르가눔이 있는데, 일반적으로 주성부에 하나의 성부만 첨가되면 단순 오르가눔이 되지만 두 성부 중 한 성부 또는 두 성부 모두가 한 옥타브나 두 옥타브로 중복될 수 있는데 이를 복합 오르가눔이라 부른다.

 

수정된 병행 오르가눔

<무지카 엔키리아디스>에 의하면, 저자는 수정된 병행 오르가눔의 예로 시퀀스 <하늘의 왕>의 두 프레이즈를 보여주고 있다. 첫 프레이즈 "Rex caeli, Domine"의 경우, 두 성부는 같은 음에서 시작하여 서로의 음정 간격이 4도가 될 때까지 오르가눔 성부가 같은 음정에서 머물러 있다가 4도 간격이 되면 병진행을 한다. 이어서 프레이즈의 마지막 두 음정에서 두 성부는 다시 동음으로 되돌아온다. 이 때 'Rex caeli"의 'li'와 "undisoni"의 마지막 음절 'ni'에서 증4도를 피하기 위하여 3도와 동음을 사용하였다. 이와 같이 4도 병행에서 간혹 나타날 수 있는 증4도는 결국 엄격한 병행 작법으로부터 벗어나 다음 단계의 발전으로 가는 중요한 원인 중 하나가 되었다.

 

자유 오르가눔

병행 오르가눔에서 한 단계 발전된 오르가눔의 형태는 11세기 후반부에 나타나기 시작한다. 오르가눔 성부의 선율은 주성부에 대해 엄격하게 병행으로 움직이는 방식에서 벗어나 반진행과 사진행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성부 간의 선율적 독립성이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볼 수 있으며, 이러한 오르가눔을 자유 오르가눔이라 부른다. 자유 오르가눔의 음정은 4도, 5도, 옥타브가 지배적으로 나타나지만, 간혹 3도와 6도가 사용되기도 하였다. 1100년경의 음악 이론서 <오르가눔 만들기에 관하여>(Ad organum faciendum)에서는 자유 오르가눔을 만드는 방식에 대해 보다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음악이론서에 의하면 오르가눔은 더 이상 성가 선율의 즉흥적인 중복이 아닌 새로운 선율의 창작이 될 수 있음을 나타내고 있다. 주성부는 오르가눔 성부 아래에 놓이게 되고, 종지는 동음과 옥타브, 그리고 4도와 5도에서도 끝난다. 또한 증4도를 피하기 위하여 B♭이 도입되었다고 주장한다. 자유 오르가눔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독창자가 아니면 부르기 쉬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주로 응창식 성가의 독창으로 노래되는 부분만 오르가눔으로 작곡되었다. 빈도수로 볼 때 반진행이 가장 많으며, 다음으로 병진행, 사진행 순으로 나타난다. 5도나 4도 음정이 두드러지게 사용되며 그 다음으로 나타나는 것은 동음과 옥타브가 주로 나타나며 간혹 3도나 6도가 나타나기도 한다. 이제는 오르가눔 성부가 위로 올라가고 주 성부가 하성부로 내려가게 되면서 두 성부간에 확실한 위치의 변화가 일어난 것을 볼 수 있다.

 

다음적 오르가눔

병행 오르가눔에 비하면 자유 오르가눔은 선율이 더욱 독립적으로 움직이긴 하지만 여전히 엄격하게 음정 대 음정 양식으로 움직이므로 오르가눔 성부의 리듬적 독립성은 그 때까지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12세기 초, 주성부인 성가 선율의 한 음에 대해 오르가눔 성부에 여러 음이 붙는 오르가눔 양식이 프랑스 중남부의 리모주(Limoges)의 생 마르샬(St. Martial) 수도원과 스페인 서북부에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Santiago de Compostela) 수도원에서 나타났다. 이러한 새로운 양식의 오르가눔은 다음적 오르가눔, 장식적 오르가눔, 또는 생 마르샬 오르가눔이라는 다양한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다음적 오르가눔에서 하성부에 놓인 성가 선율은 각 음이 아주 긴 시가로 움직인다. 또한 하성부는 이제 주성부라는 명칭 대신에 원래 성가의 선율을 의지한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각 음이 지속되므로 테노르라고 불리게 되었다. 또한 오르가눔 성부는 두플룸으로, 그리고 이러한 2성부 다성음악은 오르가눔 두플룸으로 불려지게 되었다. 13세기가 되면서 오르가눔을 작곡하는 것은 더 이상 리모주나 남부 프랑스에서 융성하지 않게 되었다. 아마 이는 이 지역에서 트루바두르의 활동이 소멸된 것과 같은 이유로 보인다. 음악적 활동의 중심지가 이제 파리로 옮겨지게 되었으며, 노트르담 대성당을 중심으로 활약하는 음악가들이 새로운 다성음악 형식의 발전에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