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리엔트 공의회와 가톨릭 음악의 개혁
가톨릭교회는 종교 개혁 운동의 확산으로 인해 유럽의 상당 부분을 상실하게 되었고 이에 대응하기 위해 내부적인 계혁을 전면적으로 단행하게 되며, 이를 반종교 개혁이라 부르게 되었다. 교황 파울루스 3세는 개혁 방안을 협의하기 위해 이탈리아 북쪽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트리엔트에서 공의회를 소집하였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1545년 처음 개최되어 몇 번의 중단을 거듭하면서 1563년까지 계속 되었으며 그 동안 4명의 교황이 집권했다. 공의회에서는 개신교의 논리를 비판하면서, 루터와 칼뱅이 공격했던 교리와 의식, 관행들을 다시 한번 공인하면서 구체적으로 쇄신할 수 있는 방안들을 협의했다. 교회 내의 악습과 타락, 부패 등을 몰아낼만한 법령들을 통과시켰고 성직자들의 품위를 높이는 교육 방안도 연구되었으며 새로운 시대적 요구를 위한 근대화 작업에도 착수했다. 공의회에서 협의된 안건들 중에서는 당시 교회 음악에 대한 우려점도 극히 일부 거론되었다. 1555년 교황 마르첼루스 2세는 교회음악의 문제점으로 세속선율을 사용한 세속성, 가사의 전달이 불분명한 복잡한 다성음악, 악기 사용, 성가대원들의 잘못된 발음과 부주의한 태도 등을 지적하였다. 그러나 트리엔트 공의회에서는 구체적으로 교회음악에 대한 칙령을 발표한다거나 직접적인 제재를 가하지는 않았다. 다만 교회에서 사용되고 있는 4천곡 이상의 부속가 중 교회 내에서 사용할 수 있는 부속가를 4개로 제한하고 트로푸스를 전면적으로 퇴출시키는 것 이외에는 일반적인 지침만 제시했을 뿐이다. 공의회에서 제안된 지침은 불순하고 외설적인 음악, 불경한 가사는 교회 내에서 제거하라는 정도였으며 미사 음악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은 각각의 추기경에게 맡겼다. 한동안 작곡가들은 트리엔트 공의회의 결정을 존중하여 그에 맞는 음악 양식으로 작곡하기 위해 노력했다. 음악의 미적인 면보다는 미사를 보좌하는 기능을 강조하기 위해 기본적으로 순차진행하고 부드럽게 진행하는 선율을 사용했고, 무지카 픽타 이외의 반음계를 되도록 피했다. 또한 단순하고 규칙적인 리듬 안에서 가사를 분명하게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했다.
팔레스트리나
음악의 왕자 또는 교회음악의 구세주라 불리는 팔레스트리나는 로마 근교의 팔레스트리나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원래 이름은 조반니 피에르루이지이지만 그를 칭하는 이름들이 매우 많았기 때문에 혼돈을 피하기 위해 본명보다는 그가 태어난 마을의 이름으로 부른다. 어린 시절 로마의 산타 마리오 마지오레 성당의 성가대원으로 봉사했던 팔레스트리나는 1544년 팔레스트리나 마을의 산타 아가피토 대성당 오르가니스트로 첫 직책을 가졌다. 이후 1551년에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의 부속 교회인 줄리아 성당의 성가대 감독을 맡았으며 2년 뒤 음악감독이 되었다. 1555년 1월, 팔레스트리나 마을의 주교였던 추기경이 교황 율리우스 3세로 선출되면서 팔레스트리나는 교황의 공식 교회인 시스티나 성당의 성가대원으로 임명되었다. 그러나 새로 부임한 교황 파울루스 4세가 교황청 교회에서는 독신의 규율을 엄수할 것을 주장하였기 때문에 기혼자였던 팔레스트리나는 시스티나 성당을 떠나게 되었다. 이후 그는 빈의 신성 로마 제국의 황제 막시밀리안 2세와 만투아의 곤차가 공작으로부터 오라는 제의를 받은 적도 있엇으나 너무 높은 급료를 요구하여 성사되지 못했고, 팔레스트리나는 죽을 때까지 로마에 머무르게 되었다. 팔레스트리나는 다산적인 작곡가로 알려져 있는데 무려 900여곡의 작품을 남겼다. 대부분의 작품은 교회음악이며 104곡의 미사곡, 300곡 이상의 모테트, 다수의 다른 교회음악을 포함하고 있다. 반종교 개혁은 팔레스트리나에게도 그 여파가 있었으며 그는 반종교 개혁의 정신에 조화되면서 공의회에서 요구한 것에 부합되는 교회음악들을 작곡했다. 팔레스트리나의 미사곡들은 평온함과 속세 초월적인 분위기를 지니고 있다고 하여 몇 세기 동안 교회음악의 전형적인 모델이 되었다.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교회 내의 다성음악을 전면적으로 금지시키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교황 파울루스 4세가 팔레스트리나의 6성부 미사곡 <교황 마르첼루스 미사곡>을 듣고 그것을 철회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그러나 이 미사곡은 팔레스트리나 1555년 교황청 성가대원으로 있을 때 교황 마르첼루스 2세에게 헌정한 곡으로 공의회에서 다성 음악의 폐해를 논하기 이전에 이미 작곡된 곡이다. 팔레스트리나의 음악 중 가장 중요한 장르는 미사곡이다. 팔레스트리나는 16세기 유행한 모든 양식으로 미사곡을 작곡했다. 51곡은 모방 미사곡으로 이 중 22곡은 자신의 곡을 인용했고, 나머지 미사곡은 다른 작곡가의 모테트, 마드리갈, 샹송 등을 인용했다. 또한 8곡은 정선율 미사곡이며, 34곡은 변용 미사곡으로 작곡되었다. <교황 마르첼루스 미사곡>이나 <미사 브레비스>와 같이 자유롭게 작곡된 미사곡도 있었으며 악곡 전체 또는 부분적으로 카논 기법을 사용한 경우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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