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음악사

서양음악사- 중세(5) 노트르담 오르가눔에서부터

by 돌체밀 2024. 2. 23.
반응형

 

노트르담 성당의 부속학교로 시작된 파리 대학은 1200년 경 자유학예와 신학을 전문으로 다루는 대학으로 발전하였고, 13세기 초 교회의 권력과 왕권으로부터 벗어나서 대학의 자율성을 얻은 후 유럽 최고의 학문기관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파리 대학은 유럽 각지에 생겨난 많은 대학의 모델이 되었으며, 파리는 루브르 궁전의 건설과 노트르담 성당의 재건립과 함께 카페 왕조의 통치 아래 프랑스의 수도이자 유럽의 문화/예술/교육의 중심지가 되었다.

노트르담 성당의 재건립 공사가 한창 진행중이던 12세기 중반부터 노트르담성당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몇몇 작곡가들이 있었다. 이들은 노트르담 악파로 불리며 이들에 의해 다성음악이 절정기를 이루게 되었고, 이후 150년에 걸쳐 파리는 유럽의 다성음악을 주도하는 나라가 되었다. 노트르담 악파는 2세대에 걸쳐 방대한 양의 전례용 다성음악을 만들어냈으며, 새ㅔ로운 음악형식의 발전과 이를 양식화하는데 큰 기여를 하였다. 대부분의 노트르담 음악 레퍼퇴가 당시 관습에 따라 이름을 적지 않은 익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중 레오냉과 페로탱은 현재까지도 잘 알려지고 있다.

 

레오냉

레오냉은 뛰어난 시인이자 음악가로, 1150년대부터 노트르담 성당과 성 브누아(St. Benoit) 대학 부속 예배당의 고위직에 있었던 인물이다. 노트르담 성당의 기록과 한 음악이론서에서는 레오냉을 'magister'라는 칭호를 사용해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레오냉은 아마도 파리 대학으로부터 학예학위(magister artium)를 받은 것으로 추정된다. 기록에 의하면, 레오냉은 당대 최고의 오르가눔 작곡가였으며, <오르가눔 대전>이라 불리는 전례의식에 사용할 음악서를 만들었고, 이는 페로탱에 의해 편집.보완되어 13세기 말가지 파리의 많은 성당들에서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오르가눔 대전>은 교회력의 큰 축일을 위한 미사와 성무일도 성가 중 레스폰소리, 층계송, 알렐루야 등 응창식 성가의 독창 부분만 2성부 오르가눔으로 작곡한 것들로 모여있다. 이들은 성무일도 성가와 미사 성가의 두 그룹으로 나뉘어 각각 성탄 시기부터 교회력의 순서에 따라 배열되어 있다. 레오냉의 오르가눔은 주로 여러 명의 독창자가 부르는 2성부 오르가눔 부분과 합창으로 부르는 단성성가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는 곡 전체에 이르러 오르가눔과 성가가 번갈아 나오는 형태를 나타내고 있다. 오르가눔 부분에는 테노르 성부의 지속적인 음표 위에 자유로운 리듬으로 움직이는 상성부로 구성된 순수 오르가눔 양식과 두 성부 모두 리듬선법 패턴에 따라 정량적으로 움직이는 디스칸투스 양식의 두 대비되는 기법들이 사용되고 있다. 디스칸투스 양식으로 쓰인 부분을 클라우줄라라 부른다. 이 때 2성부 오르가눔에서 순수 오르가눔 양식을 사용할지, 디스칸투스 양식을 사용할지 고르는 것은 작곡가의 몫이 아닌, 테노르 성부가 기초로 하고 있는 성가의 선율 양식에 따라 일반적인 원칙이 적용된다.

 

페로탱

페로탱은 레오냉의 한 세대 후인 12세기 말 부터 13세기 초에 걸쳐 활동했던 작곡가로 알려져 있으며, 기록에 의하면 페로탱은 최고의 디스칸투스 작곡가로 묘사되어있다. 페로탱 또한 기록에 의하면 'magister'로 칭해지고 있어, 그 또한 레오냉과 같이 파리 대학에서 학예 학위를 받은 것으로 보인다.

페로탱은 레오냉의 <오르가눔 대전>을 양식, 형식면에서 더욱 확장하고 이를 발전시켰다. 오르가눔의 기본 형식구조인 단성성가와 다성음악의 교대 방식은 계속해서 유지되었으나, 2성부 오르가눔 대신에 3성부 또는 4성부 오르가눔으로 확장하여 작곡했다. 또한 페로탱은 양식화된 리드매턴을 다성음악 부분 전체에 사용하려는 경향을 보였다. 레오냉의 순수 오르가눔 부분의 상성부 선율에 페로탱은 리듬선법 패턴을 도입하였고, 이는 연주상 소요되는 시간이 훨씬 단축되었으며 상대적으로 빠른 리듬 속에 연주되던 기존의 클라우줄라 부분과도 균형을 이룰 수 있게 되었다.

 

대체 클라우줄라

페로탱 시대에 많은 클라우줄라들이 레오냉의 클라우줄라를 대신하기 위하여 작곡되었고, 페로탱 또한 대체 클라우줄라를 150여개 작곡하였다. 대체 클라우줄라는 다양한 길이와 양식으로 작곡되어 있으나 기존 클라우줄라와 동일한 테노르 선율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에 대체되더라도 전례의식의 기본적 흐름은 바뀌지 않았다. 전례의식은 축일의 중요 정도에 따라 그 규모가 달라졌으며, 그에 따라 전례 행위에 요구되는 시간과 내용, 음악에 할애되는 시간 또한 달랐다. 연주자는 적절한 클라우줄라를 선택하여 부름으로써 의식에 소요되는 시간과 상황에 맞추게 되었다. 이 때부터 작곡가들은 서서히 클라우줄라를 오르가눔과 독립된 악곡으로 보기 시작하였고, 이를 기초로 모테트라는 새로운 형식이 탄생하였다.

 

페로탱 오르가눔

페로탱은 레오냉의 2성부 오르가눔에 비해 규모가 크게 확장된 3성부와 4성부 오르가눔을 작곡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13세기 초에는 3성부 오르가눔이 표준이 되었으며 4성부 오르가눔은 특별한 행사를 위해 작곡된 것이 대부분이었다. 각 성부의 이름은 아래에서부터 테노르, 두플룸, 트레플룸, 콰드루플룸이라 부르게 되었다. 성부의 이름은 악곡 전체를 칭하는 말로도 사용되었고 3성부 오르가눔은 오르가눔 트리플룸, 4성부 오르가눔은 오르가눔 콰드루플룸이라 불렀다. 모든 성가가 같은 음역대에서 움직이고 있기 때문에 종종 성부 교차가 일어나기도 하며, 각 성부는 테노르와의 협화음만 고려하였으며 다른 상성부와의 화음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전례적 가사는 테노르 성부에만 나타났고, 가사가 없는 다음적 상성부는 테노르와 같은 음절로 노래하거나 모음창으로 불렀을 것으로 보인다.

반응형